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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다

[펌핑클럽] 평등한 영혼, 바람과 만나다


         평등한 영혼, 바람과 만나다

   시작은 그랬다. 펌핑클럽은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 투성이라 '경험'을 담아두고 싶은 욕심. 열심히 참여하고 있는 ‘바람’(망원동에 살고 있는 여인)을 만나보고 싶었던 것도 이런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는 거,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를 들으며 손으로 기록하는 순간 이런 목적을 잊게 만든다. 그녀의 진심이 담긴 눈과 마주하는 순간이 그랬다.
   '특별하지 않은 인생은 없고 평범하기란 매우 어렵다. 고로 사람은 다 비슷하다.' 라는 나의 신념을 다시 확인하게 해준 바람. 그녀의 매력적인 삶을 어설프게나마 남겨보려 한다.


  keyword 1. 평등  

   바람을 사로잡은 것들의 이름들을 나열해 보자. 자연과학, 예술, 환경.. 연결 되어 있는 듯 아닌 듯. 저 단어들은 원래 한몸이었다가 근대 이후 모두 쪼개졌다. 현대인인 그녀의 안에서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

   나는 자연과학이 아름답다고 생각했어. 사회과학이나 철학이 훌륭하지만 뭔가 의구심이 있었거든. 말을 잘하는 사람은 못하는 사람의 논리를 이길 수 있어서 불평등한 구석이 있는데 반해서 자연과학은 평등한 느낌?!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분명하게 있고 누구에게나 공평해. 자연과학을 전공하게 된 것도 아마 그 이유였던 것 같아.
   자연과학만큼 나를 사로잡은 것이 예술이었어. 행위를 하면 그것에 따른 결과가 있는데 감성까지 흐르는. 정말 매력적이야. 아마 러시아와 수교가 된 직후였을 거야. 대구에 있는 대학을 다녔는데 덕분에 상트페테르부르크 발레단이 공연을 와서 볼 기회가 있었어. 뭐에 씌였는지 꼭 저걸 봐야겠다는 마음은 있는데 당연히 돈이 없지, 제일 싼 자리를 샀지.
시작하기 직전에 맨 앞 구석자리가 비어서 얼른 그 자리에 앉았는데 거기서 제일 잘 보이는 건 무용수들의 발이었어. 무대를 딛는 무용수의 발소리, 땀이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리는 거야. 발레의 동작보다 그 소리에 먼저 사로잡혔어.


   그리고 아직 환경, 에코 이런 용어가 생소하던 시절이었는데 대학 과목에 '환경과학개론'이 생겼어. 그 강의에서 '침묵의 봄'이란 책을 알게 되었지. 음, 어릴 때 대구에 살았거든. 초등학교 근처에 피혁 공장이 있었고 학교 가는 지름길인 뚝방길이 공장 근처에 있었는데, 지나갈 때는 숨을 참고 뛰어가야 했어. 냄새가 너무 지독했고 숨을 쉬기가 어려울 정도였지. 개발 성장이 우선이었던 시대였으니까 공장의 폐수를 하천으로 그대로 흘려 보냈을 테고. 어느날부터 어릴 때 놀던 강에서 놀 수 없게 된 거야.
   '침묵의 봄'을 읽을 때 유년 시절의 저 기억이 그대로 떠올랐어. 그 뒤로 계속 환경은 나한테는 매우 중요한 주제가 될 것이라는 걸 직감했고. 생협도 그런 거지. 소비를 위한 유기농 상품을 파는 곳은 많아. 문제는 그게 아니라 인간, 땅, 우주를 똑같이 지켜야 하는 거야. 평등한 존재야, 우주에서는..

   바람에게 우주 속의 인간으로서 평등을 만날 수 있는 것이 환경이었고, 그것을 원리로 보여주는 과학이 있었다. 그리고 인간의 몸으로 우주와 자연, 그 원리에 담긴 감정을 표현하는 예술. 평등함이 무너졌을 때 그녀는 용기를 발휘하였다. 누구를 위한 희생이 아니라 그녀 자신이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는 듯하다.

   결국 예술과 과학이 만난 영상편집 일을 하게 되었어. 열심히 했던 것 같아. 난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한 적도 없고 어떻게 보면 회사가 하는 말을 믿는 젊은 직장인이었어. 그 사이 결혼도 했고. IMF 사태가 터지자 회사에서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르니까 전진원이 명예퇴직서를 써두자고 하더라고. 설마 회사가 우릴 속이겠나 믿었지. 여직원들만 제일 먼저 해고를 시키는데 명예퇴직서가 있으니 법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대비했겠다, 당당하더라. 특히 나같은 유부녀는 1순위였어. 너무 억울해서 윗사람들에게 따져도 봤지만 소용이 없었고, 결국 혼자 노무사를 찾아갔어. 같이 생존한 사람, 해고된 사람 모두 불가능한 일을 크게 만들어서 귀찮게 하냐고 아무도 나서질 않았지.
참.. 정말 외로웠는데.. 결국 졌지.(웃음)

   벌써 15년이 다 된 일인데 오랫동안 상처로 남았어. 얼마전에 남편이 그때 동료 한사람과 어떻게 한자리에 있게 되었는데 나를 꼭 만나고 싶다고 해서 간 적이 있어. 그사람 하는 말이, 그때는 ‘저사람이 왜저라나’ 싶었는데 내가 싸우고 난 뒤로는 직원을 부당해고 시키는 사례가 없어졌대. 회사에서도 긴장했는지 쉽게 해고를 못하게 된 거지. 나에게 ‘고맙고 미안했다’는 말을 한번쯤 꼭 전하고 싶었다고. 마음이 훅 내려앉는 걸 느꼈어.

  keyword 2. 숙성비누, 아로마  

   바람은 성미산마을에서 살고 있다. 공동육아협동조합에서 아이를 키우고 마포두레생협의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3년 전 공동육아와 생협에서 만난 여인들과 비누두레(마을의 일공동체)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남혁이(바람의 아들) 낳고 시댁에서 분가를 하게 되었을 때, 자전거 타기 좋은 곳이 어딜까 지도에서 쿡 찍어서 망원동에 왔어. 아이를 같이 키울 곳을 찾다가 공동육아도 알게 되었고. 엄마들과 육아에 관한 얘기를 나누다 밤을 샌 날도 많고.(하하) 두레생협도 육아와 환경에 대한 관심이 있으니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 같아.


   숙성비누는 2005년 즈음 남혁이에게 아토피가 생겨서 쓰기 시작했어. 비누 만드는 것도 자연과학 분야 중 화학을 알아야 해. 그렇게 자연과학, 생활, 환경에 대한 관심이 연결이 되네.
   요즘은 워낙 천연비누 만드는 곳이 많이 생겼어. 그런데 남성적인 비지니스 마인드로 상업화 되다보니 화학첨가물이 포함된 mp비누베이스를 많이 사용해. 숙성비누처럼 1개월 이상 기다릴 필요도 계속 사람이 저을 필요도 없거든. 빨리 만들어서 돈을 많이 벌어야 하니까.'비누두레'를 시작할 때 타협을 할까도 생각했는데 도저히 안되겠더라. 우선 내가 그 mp베이스를 만지고 인공향을 사용하는 것 내키지 않았어. 나중에 후회할 일은 하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았서 하지 말자고 했지. ㅎㅎ

  keyword 3. 티벳탄 펄싱, 펌핑클럽 

   바람은 3년을 비누두레가 자리를 잡는 일에 시간을 보냈다.  올해는 활동가들의 활동비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작년부터 몸이 좀 삐걱거리더니 올해 초에는 많이 아팠다고.
   덕분에 집근처의 요가원 등록도 하고 일도 쉬면서 하게 '시간을 벌고 있는' 중이다. 그즈음 마을 사람으로만 알고 있던 아난도가 릴라에서 펌핑클럽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벌어들인' 시간을 '바람'을 위해서 쓰기로 했다.
   티벳탄 펄싱이란 말도 낯설고 두사람이 짝이 되어 몸과 몸을 접촉하는 펌핑클럽도 바람 세대의 사람들에게 익숙한 방식은 아니었을 텐데 어땠을까 궁금했다.

   내가 등록한 요가원의 선생님이 나를 보더니 짧게 말하더라. "내려놓으세요." 이 말에 그만 눈물이 핑 도는 거야. 큰 위로가 된 것 같아. 그러고보니 그 즈음에 릴라 펌핑클럽을 시작했구나.

   숙성비누를 만들면서 아로마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는데 향이 주는 매력 그 자체에서 정신적인 위안으로 관심이 넓어졌어. 향의 특징과 심리를 연결한 아로마 인사이트카드 워크샵에도 참여했어. 그래서 기의 흐름이나 차크라, 정신적 기운과 다 연결되어 있더라. 그래서 릴라에서 티벳탄 펄싱을 만났을 때 불편하지 않았어.

   마사지나 안마, 치료를 하는 의술도 좋기는 한데 다른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것이라서 뭔가 평등하지 않은 것 같아. 그리고 요가는 혼자 내 몸을 사용해서 내 몸을 살리는 것이잖아. 펌핑클럽은 두사람이 서로 에너지를 주고 받는 것이어서 좀 느낌이 달랐어.

  

   물론 처음에는 몸과 몸이 닿으니까 긴장이 되고 어색했지. 다른 사람에게 펌핑을 줄 때 불편하지 않을까 긴장이 되니까 되려 내 다리가 아프고. 나도 처음에는 아난도가 장기별 특징에 대해서 얘기하는 걸 지식으로 기억하려고 애를 썼어. 그 사이에 아난도가 내내 "내 자신만을 위해 해보라"고 계속 말했어. 3번째 즈음 되었을 때 나자신을 생각하고 아무 생각없이 음악에 몸을 맡기기 시작하니까 긴장이 풀리더라.

   장기별 진동하는 음악을 같이 느끼면서 놓아버린 상태가 되니까 난 정말 좋아. 지금..

   두달이 넘어가니까 사람과 같이 하는 부담감도 없어지고 아난도가 하는 얘기도 어느샌 돌아서면 까먹어. 지금은 카페에 장기에 관한 글을 올려놨다고 하는데 별로 보고 싶지 않아. 그냥 펌핑하는 순간에 집중하면서  내 몸에 집중하고 싶어.
   뭐랄까 말하기가 조금 조심스럽긴 한데 내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과 닿아있어. 내 자신의 긴장감을 푼 상태에서 내려 놓는 순간을 느끼는 것 말이야. 너무 푹 빠질까봐 두려울 정도야.(웃음)

   신기하다. 과학과 예술이, 삶이 바람 한 사람 속에 다 있다. 삶의 그물에 걸리지 않고 얼개를 짜가는 섬세함과 정확함이 동시에 있어서 나는 몹시 생소하고도 신기하고 매력적이다는 것이 그녀를 만나고 난 뒤의 나의 느낌. 밤새 수다를 떨어보고 싶어지네.
월요일의 펌핑클럽에서 그녀를 만나는 시간을 기다리며...



인터뷰어 / 사진 _ 삐삐롱스타킹(릴라_healing&art의 마담)